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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

부산 시립미술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

by 盞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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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립미술관에서 2021년 10월 15일부터 2022년 3월 27일까지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12월 위드 코로나가 시작하여 이제 사전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함께 전시 중인 오노프 VR 체험은 시간당 선착순 10명이니 방문하실 때 가능한 한 오노프를 먼저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전: 4.4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전: 4.4

4.4

전시 제목인 '4.4'는 그의 출생연도인 1944년을 의미하기도 하며, 한국에서 숫자 '4'를 죽음(死)과 연결 짓는 것, 또한 인생을 네 가지 지표로 나눈다면 작가 자신은 이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출생연도인 '44'의 중앙을 쪼갠 '4.4'로 표기한 것은, 그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삶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자연스럽고 사소하며 필연적인 것으로 정의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2021년 7월 14일 이 전시를 준비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총 43점의 전시될 작품들을 그가 직접 고르고 수정, 보완하여 배치될 공간도 직접 설계한 그의 첫 유고전입니다. '44'라는 숫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그가 44점이 아닌 총 43점의 작품을 가져온 것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죽음에 관하여 깊게 생각하며 숨긴 44번째 작품은 무엇이었을까요?

기념비 (Monument, 1986)
기념비 (Monument, 1986)

출발, 도착, 그 이후

세 공간으로 나뉜 전시장의 타이틀이 각각 삶, 죽음, 죽음 이후를 다루고 있다면 그가 정의한 삶은 죽어가거나 죽은 사람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의미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럽게 숨을 토해내는 사람의 영상과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형태의 작품들, 그림자 유령. 그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던 백열등은 한쪽 구석에서 금을 비추며 진자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입구에 들어서면 검은 거울 무더기를 만나게 됩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제 얼굴은 비치지 않습니다. 멀찍이서 바라보아도 벽면이나 외부가 조금 반사될 뿐 살아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죽음은 우리 스스로가 돌아볼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 상태에서 찾아온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작품의 이름은 '심장'이었지요.

미스터리 (Mysteries, 2017)
미스터리 (Mysteries, 2017)

영상 작품들도 유심히 보시길 바랍니다. 십자가 형태로 된 '잠재의식'이라는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영상 같지만 간헐적으로 번쩍거리며 전쟁의 참혹한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매일 전쟁, 테러와 각종 범죄로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우리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죽음을 망각한 삶을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영상이 재생되는 '미스터리'라는 작품 앞에서 저는 잠깐 작품 감상으로 인한 고양감을 가라앉히려 휴식을 가졌습니다. 바다, 미사일 꼬리 모양의 구조물들, 뼈만 남은 고래의 영상이 일렬로 배치된 것은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요. 바다를 제외한다면 움직이지 않는 그것들의 영상이 진행되면서 움직이는 건 살아있는 제 시간뿐이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상황의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살아 있는 관찰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죽음 그 이후는 밖으로 나가 이우환 공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공간을 분리해서 마스크로 감싼 답답한 관람 분위기를 환기한 뒤 관람객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가 얼마나 심사숙고하여 공간을 디자인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우환 공간에서는 동선이 좀 아쉬웠습니다. 이우환 공간 자체가 전시장이 분리된 형태가 아니어서 작품 하나에 집중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죽음 이후를 다룬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보고 올 가치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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