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 문화회관 생활문화관 전시실에서 2021 기획전을 하고 있습니다. 11월 12일부터 12월 24일까지 김현명, 김대홍, 김지오, 배지민, 고석원, 이원숙, 조미애 총 7명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전시실 3개 규모는 부산 시립 미술관 전시실 하나 정도로 작지만 온천천 산책 도중에 잠시 방문하거나 금정 문화회관에 공연을 보러 간다면 조금 일찍 도착하여 감상하기 좋습니다.
로비 및 복도 전시장, 전시실 1, 2, 3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배지민 작가의 수묵 작품이 2층에서부터 크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긴 여정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수묵이 만들어낸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집으로 가는 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1의 일러스트풍 작품들과 미디어 아트를 지나 드럼 소리가 나는 전시실 2로 가면 사진과 같은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드럼 악보입니다. 알레아토릭(Aleatorik)은 창작에 우연성을 도입하는 일을 뜻합니다. 작가는 드럼 악보를 읽을 수 없어 각각의 소리를 한글 소릿값으로 대응하여 자신만의 악보를 만들었습니다. 전시실에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있는데 꽤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요? 저는 20대 때 수학 과외를 하며 답안지를 보고 문제집을 채점하는 게 정말 지루했었어요. 그때 답안지를 계속 뒤적거리지 않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객관식 문제의 정답 1부터 5까지를 도에서 솔까지 피아노 음으로 대응시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답안지를 전부 외워 채점을 했는데, 그때 일이 생각나서 전시실 2에서의 감상이 즐거웠습니다. 글자를 소리로 대응시키는 것, 소리를 글자로 대응시키는 것으로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연결'이라는 공통점
기획의도는 해외에서 거주 중인 작가와 국내 활동 작가를 연결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각각의 작품들도 전부 '연결'이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석원 작가의 Docking은 빽빽하게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기하학적 문양들 사이로 파이프가 보입니다. 그 파이프의 시작과 끝을 찾으려 애써 보십시오. 아마 없을 것입니다. 모든 파이프는 연결되어 있고 시작과 끝은 그림 속에서 소멸합니다.
첫 번째 사진의 조미애 작가 작품들은 종이들을 연결하였을 때 그것이 가진 강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은 약하지만 그것이 책이 되면 강하고 단단하고 무거워집니다.
또 다른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이원숙 작가의 목판화입니다. 작품 속을 잘 들여다보면 사슴, 늑대, 개코원숭이 등 자연과 어우러진 구체적인 형상이 보입니다. 목판을 깎는 것은 굉장히 즉흥적이며 작가의 작품을 보면 그보다 더 확신에 찬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금정 문화회관은 청각 예술을 즐기기 위한 장소로 유명하지만 이 기획전을 통해 현대미술작품을 접할 공간으로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 의도처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그 둘을 연결하는 좋은 기획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파인 다이닝에 대한 글 이외에도 현대 미술에 관한 글도 꾸준히 쓰고자 합니다. 부산의 규모 있는 전시회에 관한 것은 전부 블로그에서 다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래 글은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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